■ 車 인기색상 알아보니

 
신차 영업사원들도 컬러풀한 원색 차량을 산다고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은근히 흰색 회색 검은색 등 무채색으로 유도했다. 중고차시장에서도 티뷰론 등 몇몇 차종을 제외하고는 빨간 차는 물론 파란 차나 노란 차도 구경하기 어려웠다. 20년 이상 지난 현재 상황은 어떨까. 글로벌 자동차 보수용 페인트 기업인 엑솔타(AXALTA) 코팅 시스템즈는 1953년부터 해마다 가장 인기를 끈 자동차 색상을 발표하고 있다.

엑솔타가 발표한 2013년 자동차 인기 색상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은 색상은 흰색으로 점유율은 29%에 달했다. 검은색은 20%, 은색은 15%, 회색은 12%로 그 뒤를 이어 무채색이 휩쓸었다. 한국에서도 무채색 점유율은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흑백 TV와 흑색 사진은 과거 유물이 된 지 오래지만 자동차 분야에서는 '흑백 논리'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는 셈이다.

◆ 자동차 '色'에 눈뜨다

20세기 초반까지 자동차에 색을 입히는 컬러 개념은 뚜렷하지 않았다. 아름다움보다 잘 달리게 만드는 기능에 관심이 높았기 때문이다. 1900년대 자동차를 보면 철판, 나무, 가죽, 고무 등이 가진 원래 색상이 그대로 차체 컬러를 형성했다. 자동차에 컬러 개념이 도입된 것은 대량 생산과 관련 있다. 1913년 헨리 포드는 대량생산 기법을 도입해 포드 T형 자동차를 생산했다. T형은 차체를 검은색으로 칠했다. '멋'보다는 구하기 쉽고 작업하기도 편했으며 비포장도로에서 타기에도 부담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 도장기술이 발전하지 않은 당시에는 한 가지 색만으로 칠해야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어 검은색은 자동차를 대표하는 컬러가 됐다.

검은색 포드 T형은 곧 도전에 직면했다. 쉐보레는 1924년부터 7가지 색상을 구비한 자동차로 검은색에 식상해진 소비자 마음을 사로잡았다. 1930년에는 캐딜락 라살에 투톤 컬러가 처음 도입됐다. 자동차 컬러는 도장 기술이 발전한 1950년대에 '컬러 혁명'이라 불릴 정도로 다채로워졌다. 원색은 물론 분홍색 금색도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인기를 끌었다.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도 영향을 줘 영화 '핑크 캐딜락'과 '황색의 롤스로이스' 등이 제작됐다.

◆ 무채색 선호는 세계적 현상

년 메르세데스 벤츠 레이싱카 W25 - 실버 애로. 색은 시각적 이미지를 대표한다. 이미지는 사람을 감성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따라서 나라마다 민족마다 선호하는 색이 다르다. 자동차에서도 국가를 대표하는 색이 따로 있다. 독일은 벤츠, BMW, 아우디 등 명품 차들을 만드는 나라답게 쇠 색깔인 은색을 좋아한다. '저먼 실버'다. 은색은 차가우면서 에지(edge)를 살려주는 효과도 지녀 고성능 자동차에 제격이다. 은빛 화살처럼 질주하는 벤츠 레이싱카를 '실버 애로'라고 부르기도 한다. 프랑스는 냉정하고 평온한 이미지를 지닌 파란색을 레이싱카에 즐겨 사용한다. 이 색상을 '프렌치 블루'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색상이 있다. 흰색을 필두로 한 무채색이다. 엑솔타 2013년 보고서에 따르면 북미에서 판매된 자동차 중 26%가 흰색으로 칠해졌다. 그다음으로 검은색 20%, 은색 14%, 회색 13% 순이었다. 빨간색은 9%, 파란색은 7%로 유채색 계열에서 인기 색상으로 선정됐다. 유럽에서도 흰색 점유율이 29%로 가장 높았다. 검은색은 21%, 은색과 회색은 각각 13%로 그 뒤를 이었다. 흰색이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 '애플' 효과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흰색은 종전에는 냉장고나 화장실 타일 등과 연결됐지만 애플이 흰색을 제품에 많이 사용한 뒤 훨씬 가치 있는 색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 한국 소비자 무난한 무채색 골라

국내 소비자들은 무채색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왔다. 엑솔타 2013년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서 흰색 차량 점유율은 32%로 세계 평균 29%보다 높았다. 은색은 18%, 회색은 17%, 검은색은 16%로 그다음이었다.

흰색은 예부터 민족성을 반영한 색상인 데다 차를 더 크게 보이도록 만들어줘 주로 소형차에 어울린다고 여기는 소비자들이 많다. 은색은 때가 잘 타지 않아 관리하기 쉽고 튀지 않아 무난한 데다 차분한 느낌도 줘 나서기를 싫어하는 한국인들이 좋아한다는 분석이 있다. 검은색은 안정성, 강직함, 무게감, 중후함 등 이미지를 지녀 대형차에서 인기다. 또 차량 크기가 커질수록 선호 색상은 흰색 계열에서 검은색 계열로 옮겨갔다.

구상 국민대 자동차ㆍ운송디자인학과 교수는 "국내 소비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유채색이 있더라도 차를 계약할 때는 무난한 무채색을 고르는 보수적 성향을 보인다"며 "여기에 차를 미리 주문해둬도 빨리 팔 수 있다는 신차 영업소 측 판매 전략이 어우러져 무채색 선호 현상이 심해졌다"고 분석했다.

현대차에 따르면 현재 판매되는 준중형차 아반떼는 흰색 점유율이 48.6%에 달했다. 은색 계열인 슬릭 실버는 25.7%, 하이퍼 실버는 19.2%로 그 뒤를 이었다. 준대형차와 대형차에서는 검은색이 흰색을 제쳤다. 그랜저는 검은색이 57.8% 점유율을 기록했다. 제네시스는 검은색 51.8%, 회색 14%, 메탈 13.7%로 나왔다. 에쿠스는 검은색 점유율이 85.3%로 압도적이었다.

■ '튀는 컬러'는 중고시장서 찬밥

중고차시장을 카메라로 담으면 컬러 사진도 '흑백 사진'처럼 보인다. 무채색이 점령했기 때문이다. 신차시장에서 소비자들이 무채색을 선호하는 현상이 중고차시장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매일경제가 최근 국내 최대 중고차 오픈마켓인 SK엔카닷컴(대표 박성철)에 의뢰해 올 1~8월 엔카 홈페이지에 등록된 매물을 대상으로 색상별 현황을 조사한 결과도 이를 입증한다.

SK엔카닷컴에 따르면 경차는 흰색(25.3%)이 가장 많았고 은색(16.9%) 검은색(10.0%) 진주색(9.6%) 쥐색(7.9%)이 뒤를 이었다. 소형차는 흰색(30.4%) 은색(27.0%) 검은색(9.3%) 진주색(6.7%) 순이었다.

준중형차도 흰색(34.3%) 은색(24.8%) 검은색(14.6) 진주색(9.4%) 쥐색(8.7%) 순으로 무채색이 점령했다. 유채색은 소형차에서 빨간색(6.2%)이 점유율 5위를 기록한 게 전부다.

중형차부터는 검은색 선호도가 높아졌다. 중형차는 검은색(23.1%) 진주색(21.9%) 은색(19.3%) 흰색(18.7%) 쥐색(5.9%) 순이었다. 대형차는 검은색(59.2%) 점유율이 가장 높았다. 은색(13.1%) 진주색(13.1%) 흰색(6.8%) 쥐색(4%)이 뒤를 이었다. SUV에서는 은색(27.6%)이 검은색(23.3%)과 흰색(22.5%)을 제치고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SK엔카는 중고차 딜러들이 팔기 쉬운 무채색을 선호해 실거래 현장에서는 유채색을 신차 시장보다 더 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색(色)다른' 취향엔 대가가 따른다. 자동차는 출신 성분이 같아도 중고가 되는 순간 가격에서 차별을 받는다. 사고 유무, 관리 상태, 판매 지역 등 수많은 변수가 작용해서다.

색상도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어울리지 않는 색상으로 칠해진 자동차를 딜러들은 문제가 있는 차라는 뜻으로 '하자'라고 부른다.

하자 색상인 중고차는 수요가 적다 보니 5% 이상 저렴한 값에 팔 수밖에 없다. 대형차는 100만원 정도 가격이 떨어지기도 한다. 겨울 비수기에는 장기 재고가 될 가능성이 높아 더 많이 감가된다. 소형차와 준중형차에서는 검은색이 하자 색상이다. 다만 경차와 SUV는 색상이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작은 편이다. '색상'에 너그러운 20ㆍ30대 소비자가 많아서다.